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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헤어지라고요? 죽음을 부르는 데이트
여성의 전화 최선혜 소장

“우리 그만 헤어져.” 연인들 간에 흔히 할 수 있는 이별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여자는 돌아섰고, 남자는 분노에 찼다. 사귀는 동안에도 종종 드러났던 남자의 폭력성에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 헤어짐을 결심했고 그게 이 인연의 종착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누가 알았을까. 그게 여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걸. 남자는 여자 목을 조른 후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직도, 사랑하는데 어떻게 헤어져. 헤어질 바엔 차라리 죽어버려.”

 

6개월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렸고,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의 얼굴을 발로 차 기절시켜 마구잡이로 폭행을 가했다. 또 어떤 날에는 헤어진 여자 친구를 폭행해 치아를 5개나 부러트렸으며 헤어지자는 여자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기에 절대 괜찮지 않은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한 때는 열렬히 사랑한 연인들이, 어쩌다 저 지경까지 온 것인지, 또 두 연인 간에 벌어진 폭력을 단순한 연인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간섭이 되는 건 한 순간이고 간섭이 집착이 되는 건 더 쉽다.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고 그게 사랑하는 연인 간의 이야기라면 더 지나칠 수 없다.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단지 신체적인 상해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으로 심한 후유증을 앓기 때문. 그 어떠한 변명도 용인될 수 없는 데이트 폭력, 이제는 멈춰야 한다.

 

다신, 안 그러겠다고 했잖아.

 

“알아요. 아는데, 다음날이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요. 그리곤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죠. 평상시에는 정말 다정하고 나를 아껴주는 남자예요. 술을 마시거나 제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는 걸 보는 날만 빼면.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아는데 그래도 어쩌면 이 남자 그만큼 저를 사랑하니까, 너무 좋아하니까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도 아직 그를 사랑하니까.”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말中>

 

분명 폭력은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들은 피해자 본인이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지하지 못한다. 실제로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뺨을 때리는 등 한 번의 폭력에 상담을 청해온 피해자는 거의 없었다. ‘다시는 그렇지 않겠다’는 말에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 특히 언어폭력의 경우 사람마다 느끼는 기준과 경계선이 모호해 피해를 당하고도 이게 언어폭력인지, 싸움 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말인지 많이들 헷갈려한다. 이를 입증하듯 데이트 폭력 재범률은 다른 범죄 재범률에 비해 높은 편에 속한다. 이는 다시 말해 폭력을 가한 후에도 연인관계가 유지된다는 뜻.

안전 이별이 쉽지 않다. 대다수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과에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지’,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폭력을 순간의 실수로 넘기기 때문에 폭력 행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반복적인 폭력행위는 단순한 폭력을 넘어서 스토킹, 협박, 성폭력 문제까지 양산하며 더 큰 범죄로 변모할 가능서이 매우 높다. 한국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스토킹 가해자의 대부분이 데이트 상대자였으며,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 피해가 지속되기도 했다. 스토킹은 지속적·반복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특성을 갖고 있고, 상담사례의 경우에서도 일회에 걸친 피해로 상담을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데이트 폭력 법적 대안이 미미한 것 역시 피해자들의 마음을 두 번 다치게 한다.

“경찰도 사랑하는 연인끼리 생긴 문제는 알아서 잘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해요. 좋아서 사겨놓고, 한 번 싸웠다고 쪼르르 경찰서 와서 신고할 일이냐며 둘이 좋게 해결하라는데 아, 내가 유난이었나 싶더라고요.”

사회로부터 또는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길이 없는 피해자들 대부분 자신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한다. 연락처 변경은 물론, 이사를 한다거나 직장을 옮기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적인 피해를 받는다.

나아가 피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지인,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주변과 관계를 단절하는 등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스스로를 동굴에 가둔다.

이에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물론 증거자료가 있으면 성폭력특별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성폭력, 성추행, 몰래카메라가가 그러한 예.

하지만 데이트 폭력의 경우 다른 폭력과 엄연히 성격 자체가 다르다. 아직까지 데이트 폭력은 연인끼리 일어날 수 있는 싸움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큰데다 신체적 폭력이 발생했다 해도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고 사랑싸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크기 때문. 더욱이 심한 모욕감을 주는 언어폭력은 처벌의 기준 조차 모호해 처벌은 고사하고 보호도 어렵다. 분명 남이 남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사법기관의 문턱에서 외면당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도 영국 ‘클레어법’ 도입이 시급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클레어법(Clare’s Law/2014년부터 시행)’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이름을 딴 법으로, 애인의 폭력 전과 등을 조회할 수 있으며 정보를 요청받은 경찰 등은 정보 공개가 필요하고, 합법적이며 비례 원칙에 맞는지 고려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이외에 미국은 여성폭력 방지법으로 데이트 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클레이법’은 고사하고, 그 흔한 접근금지명령 조차 실행되지 않는 현실의 데이트 폭력.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바로 알려야 하며 어떠한 폭력도 대처가 단호하고 명백하다면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진다.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경우 지금 당장 사법제도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후의 일을 위해 모을 수 있는 증거는 모두 모아두는 것이 좋다고. 폭력과 협박의 증거물이 될 수 있는(상처, 부서진 물건) 사진이나 동영상을 꼭 기록해 두고 문자나 메일, 통화 및 대화녹음도 저장하는 것이 좋다. CCTV 영상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동 삭제되므로 빠른 시일 내에 확보 하고 몸에 상처를 입었다면 병원진단서를 발급받도록 한다. 단 이때 데이트 폭력으로 생긴 상처임을 반드시 밝힐 것.

경찰의 무심한 시선이 두렵다고 경찰신고를 피해서도 안 된다. 경찰신고 및 상담기록은 피해를 입증하는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신고하는 것이 좋다. 신고 당시 경찰관의 소속과 이름을 알아 두고 신고 과정에서의 모든 대화 혹은 통화 내용을 녹음해야 하며 데이트폭력으로 신고하는 피해자에게 ‘연인 사이에 해결할 문제’, ‘신고할 내용이 아니다’ 등의 부적절한 대응을 한다면 각 경찰서의 청문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하면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 사람이 폭주하고 있고, 그 폭주하는 기관차에 어느 한 사람은 깔려지고 신음하고 있는, 데이트 폭력. 범죄 데이트 폭력, 남녀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심각한 사회문제이고 모두의 관심필요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여성의 전화 최선혜 소장 인터뷰>

 

#1. 나를 사랑하니까 통제한다고?

 

여성의 전화 최선혜 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이별과정에서 살해를 당하거나 그와 비슷한 종류의 범죄들이 신문기사를 비롯해 미디어 매체를 통해 불거지면서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실제로 데이트폭력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을 만큼 횟수가 빈번하다.

이에 대해 최 소장은 “1983년부터 여성의 전화라는 단체가 생겼다. 여성폭력 문제를 처음으로 상담하고 특히 가정폭력에서 여성폭력과 관련된 상담을 많이 했는데,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 당시 상담이나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포착했던 것들이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결혼 전부터 데이트 폭력이 있었고, 데이트 폭력이 많다는 것을 예전부터 포착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의 전화는 10여 년 전부터 데이트폭력이라는 명명을 쓰고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교육과 상담을 계속 진행해 왔다. 최근 구하라 사건을 비롯해 언론 기사에 데이트 폭력이 노출돼 더 부각될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데이트 관계에서 주요하게 지속적으로 일어난 문제라라고 생각한다. 최 소장은 힘주어 말했다. 명명이 주는 힘은 실로 어마무시 하다고.

“데이트폭력이란 명명자체가 낯선 용어다. 예전에는 피해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데이트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다가 데이트폭력이라고 명명하고 이러한 행위들이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상담이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어느 순간 언론에서 대중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그런 폭력의 행위가 신체적 폭력, 성적폭력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폭력, 다양한 통제 행위까지 폭력 범주로 인식하게 되면서 데이트폭력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 그리고 실태 조사나 상담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에서 통제 행위가 폭력 행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옷차림을 간섭하며 친구를 못 만나게 하고 휴대폰을 수시로 감시하는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폭력행위 범주 안에 들어간다. 때론 이러한 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최 소장은 통제행위와 관련한 폭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라고 지적한다. “너를 사랑하니까, 내 앞에서만 치마 입어. 나 질투 나니까 다른 남자 만나지마. 로맨틱한 사탕발린말로 포장되기도 하는 표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연인 간의 가치관 통제와 관련해 많은 상담 요청을 받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남자가 음주를 한 후 여자를 폭행했다. 이러한 경우에도 ‘술 마시고 한 실수인데 이해해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직도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통제 행위에 대해서는 폭력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러한 행태가 지속되면 폭력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고 그 폭력에 오래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친밀한 관계 내에서 일어난 폭력의 본질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2.“너의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최선혜 소장은 가장 큰 문제로 폭력이 발생하면 작동되지 않는 사법시스템을 꼽았다. 단순한 연인간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해도 폭력의 범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신체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정신적 또는 마음의 상처는 법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폭행을 당했을 경우 역시 상대방으로 인한 상처가 맞는지 증명해야 하며 이로 인해 증거 입증이나 입증책임 문제로 처벌에 어려움이 많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교육이나 인식변화를 위한 활동을 통해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인터뷰 말미 최 소장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알았으면 좋겠다. 데이트폭력은 피해자 본인 탓이 아니라는 것을. 유난히 피해자 책임 탓이 큰 것처럼 느껴지는데 친밀한 관계 내에서 주위 인식이나 도움이 미비하면 관계 안에서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결코 네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네가 이 관계가 잘못됐다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잘못된 게 맞다.”

끝으로 최 소장은 지금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폭력을 비롯해 여성폭력과 관련된 상담소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상담소에 전화를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또는 고액의 돈이 필요할 것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무조건 사건화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익명은 물론 무료로 방문하지 않아도 전화 상담으로도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최 소장은 “주위 친구에게 상담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 보니 주위 친구의 인식에 따라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친구의 입장이면 피해자를 충분히 지지해주고 전문기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을 찾아 상담을 받아 보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상담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희남  1025ksb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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