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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의 사투 끝에 탄생한 단 하나의 황금빛 ‘거창유기’
거창유기 이혁 대표

오랫동안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00여 년의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지켜내야 한다는 굳은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자신에게 오기까지, 약 100여 년에 걸쳐 4대째 이어진 거창유기. 이 혁 대표에게 있어 거창유기는 어쩌면 운명, 아니 숙명과도 같았다. 유기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이었고, 당연히 가야할 길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

 

1924년부터 시작된 거창유기 4대의 역사는 실로 놀랍다. 일제의 수탈과 억압 속에서 유기를 지켜낸 1대 김석이 옹, 사라져가는 경남의 단조유기를 이은 2대 이현호 옹,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갈 곳을 잃고 있던 전통 주물유기를 붙잡아 되살린 3대 이기홍 장인, 그리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 유기를 알리고자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4대 지금의 이 혁 전수자까지. 거창유기가 밟아온 그간의 길은 빠르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올곧게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언제나 묵묵히 제 길을 가며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역사와 정신이 담긴 거창유기는 유기의 생활화는 물론,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유기를 목표로 오늘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명장의 손길에서 탄생한 정직한 유기

 

거창유기만의 매력을 꼽으라면 단연 우수한 품질이다. 실제로 다른 유기를 사용해 본 소비자들도 일단 한 번 거창유기를 사용하게 되면 거창유기만을 찾게 된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이 혁 대표는 말한다. “할아버지 때부터 주물유기하면 거창 이현호 명장을 꼽았고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우수한 품질은 기본이며, 유기를 담을 케이스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세심한 부분을 놓치는 법이 없다.

60, 70년대만 해도 유기그릇을 판매할 때 따로 케이스에 담아 판매하는 곳이 유일무이했는데, 비싼 유기식기를 봉지에 넣어 판매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창유기는 케이스를 자체 제작해 판매했다. 받는 고객들로 하여금 특별히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끔 하는 ‘고객감동’ 마케팅이 통한 셈이다. 홈페이지 역시 업계 최초로 도입해 한국 유기만의 아름다움을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공헌을 했다.

거창유기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거창유기와 다른 유기의 품질을 비교했을 때 표면이 부드럽다보니 관리하기가 편하다고. 그도 그럴 것이 거창유기 제품은 고품질 주물제작으로 유기그릇의 상품가치를 높인다.

특히 방짜 유기는 두드려 만든 것이 아닌 전통 합금법을 의미하며, 두드려 만든 유기그릇은 동일한 모양이 나올 수 없다. 즉 기계가 아닌 장인의 손에서 제대로 탄생한 것이 거창유기의 유기그릇이라는 것이다. 역시 정직과 신용이 깃든 제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항상 소비자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 혁 대표는 2010년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대장암 3기 선고에 유기의 길에 접어들게 됐다. 이 대표는 아버지의 의식이 혼미한 가운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 이 공방 사람들은 다 누가 먹여 살리지, 동생들은 그리고 집은 어떻게 되는 거지.’ 너무나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이 이 대표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생각지도 못한 채 갑작스레 다가온 유기의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혁 대표에게 유기는 삼시세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마냥 보통의 일상이었다. 그가 살던 공간이었고, 학생 때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곳이 아버지의 작업실이었다. 그래서 일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믿음엔 일말의 불안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기는 이 혁 대표에게 있어 가야할 유일한 길이였다는 것을. 아버지가 편찮으신 이후로 그것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정립된 셈이다.

3대인 아버지와 4대인 이 혁 대표는 확연히 다르다. 이 혁 대표는 유기가 젊은 세대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한다.

사실 유기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관심도가 낮은 편인데, 거창유기는 젊은 층들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기를 쥬얼리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창유기의 생각은 적중했다.

신화 20주년 콘서트에 거창유기의 반지, 목걸이, 팔찌를 판매했는데 반응 자체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특히 쥬얼리 분야는 대부분 고가라 소비자층이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데, 거창유기에서 선보인 유기 쥬얼리는 판매량이 약 2배로 뛰어올라 그 인기를 가늠케 했다.

20~30대 젊은 세대가 집중할 수 있고 관심도를 가지는 쪽에 유기가 접근해 일단은 한 번 써보고 장점을 느끼고 그 다음에 색감과 고움, 한국적인 색채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 거창유기의 바람이다. 거창유기의 바람처럼 접근성이 용이해진다면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오늘도 꾸준히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젊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디자인이 가미된 유기를 꼽을 수 있다.

“유기가 전반적으로 기존까지는 똑같은 색채, 똑같은 감성에서 모양만 살짝 변형해 20~30대 세대에게 강요했는데, 그것은 정말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일까. 거창유기는 유기의 주요 소비자층인 50~60대 세대가 좋아할만한 디자인과 그에 맞춰 일반적이지 않은 유기를 비롯해 20~30대 세대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저렴한 가격대의 유기까지 제품의 폭이 넓다.

더 이상 유기는 고가가 아니다. 물론 고가의 유기 제품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거창유기에서는 소비자 선에서 구매할 수 있는 2~4만 원 금액의 유기도 있다. 식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쓰일 수 있는 하나의 금속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오늘도 거창유기의 작업실 온도는 뜨겁다. 200년 뒤에도 있을, 아니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공방, 거창유기. 그 곳엔 평생토록 대물림 할 수 있는 유기가 있다.

 

박희남  1025ksb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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