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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과 인내를 일깨워주신 어머니
장인순 (전)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저 높은 곳에도 세월이 있다면 진작 백수가 되셨을 어머니를 머리카락이 하얀 아들이 지금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보고 싶은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난다고 한다.

보릿고개와 배고픔이 상식으로 통하던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였던 1960년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외국 유학은 꿈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고 목표였다. 힘들었던 5년간의 가정교사 덕택(?)으로 얻은 결핵을 가까스로 털고 1969년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당시 정부가 허용하는 100달러를 마련할 길이 없어 가슴 아파 하시던 어머니의 그늘진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어머니에게 아들의 유학은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었고, 가난을 떨쳐버릴 수 있는 삶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마련해 주신 100달러는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님의 애틋한 사랑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나라 사랑, 민족혼

 

유난히 눈이 많았던 그해 겨울, 유학길에 오르기 전날 밤 어머니께서 내 방에 들어오셨다.

떠나기 전 어머니께서는 눈물과 정감 대신 하얀 종이에 곱게 싼 것을 건네주시고는 조용히 방을 나가셨다. 순간 내 손 안에 들린, 무게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은 무엇일까?

평소 말씀이 적으셨고, 혼자 7남매를 기르시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 한 번도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주신 종이를 풀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깨끗한 태극기” 한 장이 얌전히 접혀 있었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펼쳐들고 오랫동안 어머니의 마음 앞에서 가슴 메이는 통증을 느꼈다.

아, 어머니! 교육을 받지도 못하신 어머니가 단돈 100달러를 갖고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주신 한 장의 태극기에 어떤 의미와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십여 년 이상 일본에 살면서 국가 없는 국민의 비애를 몸소 체험하신 어머니이기에, 더 큰 땅에 가서 빨리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조국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라는 어머니의 민족혼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던 날, 그렇게 기뻐하시던 어머니! 그 후 일 년 만에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 이 나이도 변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라는 단어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우리들의 삶에 가장 가까운 단어이며, 자식은 그분의 영혼과 피를 물려받은 분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으로 승화된 어머니의 눈물

 

왜 어머니는 그렇게 힘든 삶을 살면서 세상을 탓하시지 않고, 눈물을 한 번도 보이지 않으셨을까? 삶이 너무 힘들어 눈물이 마르고 기력이 없어서였을까? 지극히 여리면서도 강한 어머니의 삶이, 지금까지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버팀목이 되었다.

유학 시절 연구실에서 실험도중 폭발사고가 나서 얼굴을 제외하고 팔과 몸에 2~3도의 심한 화상을 입고 두 차례 피부이식까지 받는 고통 속에서도, 외국인 의사와 간호사 앞에서 한 번도 아프다고 소리를 낸 적이 없을 만큼 그 심한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자존심’과 ‘인내심’ 때문이며, 어머니가 주신 태극기가 나를 붙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내 귀에 생생히 남아있는 어머님의 말씀은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라.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훨씬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남 몰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많은 통곡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자식들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건강하게 키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많은 눈물이 사랑으로 승화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어머니를 단 한 번도 가슴에 안아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렇게 여리고 가녀린 어머니를 왜 한 번도 안아 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자주 안아드리라고 권하고 싶다. 인간은 인간을 사랑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스승이요, 멘토이며, 정신적인 지주이자 버팀목이었으며,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장 훌륭한 교육자셨다. 나도 두 딸을 유학을 보낼 때 몰래 가방 속에 태극기를 넣어 보냈는데, 그 후 가서 보니 공부하는 방 벽에 태극기가 걸려있어서 참으로 기분이 좋았었다.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은 젖먹이에서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함께하는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정교육이 무너지면 모든 교육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교육은 정직한 인성을 가진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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